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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책] 문보영 <일기시대> (민음사 매일과영원)

by yooffy1 2021.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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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일기시대> 문보영


주의사항
#잡설많음
#지극히개인적

책에 관한 내용만 보실 분은 볼드체와 그림만 참고 하세요.

문보영 - 일기시대


1 인트로
일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일기론


일기에 다루는 책인 만큼 저자 개인의 감상과 본인이 꾼 꿈 등에 관해 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사실 민음사 홈페이지에서 보고 영업 당해 구매하여 5월부터 읽고 있었다. (5/15시작) 하지만 한 사람과 코드를 맞추고 뒤통수 저 밑에서 분출되는 것 같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묘사와 현실과 상상을 배회하는 신박한 창작물인 이유 등 때문에 졸리거나, 읽기 싫어지면 바로 패스하면서 세상 가볍게 읽었다.

사실 며칠 책 안보다가 '뭐 읽지?' 싶으면 한 에피소드씩 보던 터라 내용이 세밀하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문보영시인의 <일기시대>가 땡기는 그 분위기가 있다. 일단 이동하지 않아야 한다. 독서시간 대부분을 출퇴근 지하철에서 채우는데 <일기시대>는 내 하루를 마무리하는 다이어리를 쓰듯이 조용하고 내밀한 곳에서 보고싶었다.

또한 어수선하게 평온해야 한다. 집이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지기 딱 진전인 환경에서 묘하게 평화에 파묻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덮어두었지만 ing형으로 읽고 있는 <일기시대>가 생각났다.



2 특징1
드로잉


이 책의 가장 가시적으로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림이 많다는 것이다. 에피마다 작가가 저작 중인 장소 혹은 설명하고자 하는 루트나 개념에 대해 간략한 구조도를 제시한다. 자주 많이 등장하는 그림은 작가의 방 가구배치도이다. 가구 곳곳마다 번호표가 달려있고 실제로 설명을 이런 식으로 한다.

문보영 일기시대 192쪽

회사에서 말하기 싫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발성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번호표 다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1이 개요 2가 절차 3은 세부내용이다. 1은 구회의 내용 요약하여 삽입하였고 2는 니가 코멘트 줬던 내용 반영했다. 3은 최대한 두괄식으로 간략하게 썼으니 지엽ㄴㄴ 우선 개괄적으로 봐주시고요. 4는 3의 세부실행방안이며 4의 문제점은 5인데 5는 3의 하단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안타깝게도 6도 발생 가능한 또다른 애로사항인데 ~~필요에 의해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읽어보시고 '메일'로 의견 주세요"




3 특징2
인용구와 상상친구


서문부터 카프가가 등판하고 많은 에피소드에서 다른 작가의 책의 인용구가 나온다. 아마 문보영시인도 뭔가를 읽다가 퍼뜩 쓸 것이 생각이 나서 일기를 썼을 것 같다. 일종의 뮤즈 역할을 해준 것이다.

문보영 일기시대 180쪽

가끔 일기 쓰려고 자기 전에 펜을 들면 그 하루에 별일이 없었거나 상기하기도 싫은 별일들이 솟아나서 침대에 그냥 누워버리거나 유튜브 삼매경에 빠지는 일들이 있다. 이럴 때 문보영 시인처럼 어떤 책의 한 구절이나 인스타그램 갬성글, 카카오#FUN 같은 아무 글이나 보고 주절거리면 된다는 게 새삼스레 다시 인지가 되었다.

<일기시대> 속 인용구는 처음 보는 구절도 많고, 앞에서 살짝 언급했듯이 내 문해력이 작가와 같을 수는 없으니까 '아 뭐지? 정신력을 소모하기 싫다' 싶으면 넘겨버렸다. 그런데 <일기시대>에는 저자의 상상 속 친구 '뇌이쉬르마른'이 등장한다. 상상 속 상상 동물인 친구라는 설정과 뇌이쉬르마른의 인격(?)을 소화하기 싫어서 처음에는 그냥 넘겨 버렸었다. 뇌이쉬르마른이 인용구는 아니지만 비슷한 수준의 진입장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 무시하고 지나가기엔 문보영시인은 뇌이쉬르마른과 너무 친했다! 물리적, 시간적 제한도 없는 상상속 친구라 갑작스럽게 곳곳에서 자주 등장하여 결국 책 초반으로 돌아가서 뇌이쉬르마른이 어떤 친구인지 살펴보았다. 뇌이쉬르마른은 시크하고 현명한데 츤데레면서 귀엽다.

유튜브 북튜버 겨울서점 채널에서 뇌이쉬르마른 탄생설을 보았다. '일기를 쓰다 보니 나라는 화자가 지겹고 위험하게 느껴져 뇌이쉬르마른이라는 3인칭 화자를 데려왔다'는 것이다. 쓰고 싶은데 쓰기 싫다면 예전에 읽었던 책을 뒤적여 연필 자국을 찾아야겠다. 써야 하는데 글의 주체와 객관물이 모두 나 자신이어서 진부하게 느껴진다면 상상 속 친구를 만들어봐야겠다.





4 작가와의 공감: 자잘한 경험의 공유

에세이류를 읽을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작가와의 공감인 것 같다. 일기시대를 읽으면서 공감 갔던 구절들이 많은데, 생각나는 소재는 네 가지 정도이다.

4-1 셀프토크

완독 후 책을 주르륵 훑어보니까 밑줄이 제일 많은 파트가 23쪽부터 시작되는 '모방자'에피소드였다. '초보적인 배움은 무언가를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나와 완전히 다른 누군가와 무언가를 함께할 때 나 자신에게서 저절로 발생한다'라는 파트였는데, 가장 공감 가는 구절은 아래와 같다.


어떤 말을 거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쓸데없는 생각에 시간 할애가 심하다. 각종 걱정,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곱씹기, 내일 뭐 먹을지 공상하기, 로또 어느 지역에서 살까 고르기, 지금 내가 자기 싫어하는지 생각하기, 주말 약속 장소를 a에서 b로 옮기면 상대방이 뭐라고 할까 예측하기 등등 그럴 시간에 그냥 잠을 자란 말이야!



4-2 독서남용


셀프토크 내용 바로 다음 장에 있는 문장이다. 해야 할 과제에서 도피하기 위해 독서를 택하기도 한다는 문구에서 무릎을 탁 쳤다.

청소년기의 도서관 출입 회수와 성인이 된 이후의 서적 구입비는 그 시절 안고있는 삶의 무게에 비례했다. 주로 시험기간에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같은 시리즈물을 끝냈다. 고3 여름방학에 제일 집중해서 본 책은 트와일라잇이다. 트와일라잇-뉴문-이클립스-브레이킹던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를 탐독했고 심지어 기억력에 큰 문제가 있나 싶게 사람 이름이랑 단어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이 책들은 책 제목뿐만 아니라 주인공 이름, 표지 디자인까지 기억한다.

다 커서는 인생이 답답하면 책을 봤던 것 같다. 그래서 대학교 다닐 때는 안 읽었다. 고민도 걱정도 갈망도 아무것도 없어서 무에 가까운 시절이다. 취준과 함께 질풍노도가 다시 찾아왔지만 걱정을 위한 걱정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자기 계발서 위주로 빌려봤었다. 다 읽은 건 없을 듯싶다. 제목에 혹했지만 그들은 알량한 위로만 던질 뿐 해결책을 주지 않았다.

며칠 전 민음사 패밀리데이 시즌에 책 26권을 샀다. (민음사 패밀리데이) 맞게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서 남의 지식에 기대고자 했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달을 주야장천 매달려야 하는데 그렇게 완성된 책에서는 저자의 인생철학과 엑기스가 담겨있을 테니 빨대 꽂아 쪽쪽 흡입하고 싶었다.

소설은 가뭄에 콩 나듯 보는데 고전 11권, 젊은작가시리즈 9권을 골랐다. 어디서 들은 것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명작이나 고전을 읽는 이유는 어떤 문제가 가진 핵심 문제가 사회 구조적 맥락이나 시대의 흐름에 끼워져 있다면 그 해결책은 다른 시대의 텍스트를 통해 우리와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을 굳이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라는 주장을 봤었는데 맞는 말인 것 같아서 소설 보기를 시도해보려 한다. 그러니까 결국 회사 다니기 싫은데 다녀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그런 마음가짐을 아침저녁으로 수양해야 하는 건지, 다 때려치우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지, 새로운 것을 한다면 그럼 여태껏 찾지 못한 내 적성은 있는지 뭘 하든 어떤 철학으로 살아야 덜 불만스러운지 뭐 그런 게 궁금하다는 이야기다.

3부의 '운전 중이므로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에피소드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회복'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조현병의 재발현을 막기 위해 강박적으로 증상이 없었던 날을 반복하는 어머니와 치료 시설 입소를 반복하며 자기 효능감을 발견해나가는 약물중독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반복을 사랑하고 규칙 속에 평온이 있다는 것을 믿으므로, 오늘이 오늘만으로 괜찮다면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나를 모험에 밀어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복할 가치가 있는 행동인지, 조현병이 나아진 것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검증을 위한 시간이 오래도록 필요하다. 검증의 대상과 기준 모두 26권 안에 있길(그럴 리 없겠지만)



4-3 불면

<일기시대>는 주로 새벽에 쓴 글이다. 저자는 불면증이 있다고 한다. 나도 16?17?년즈음에 불면증이 심해서 정상적인 사고가 힘들었었다. 그래서 저녁~밤에 돈 벌려고 과외도 많이 늘렸었는데 그랬더니 더욱더 잠이 안 와서 평균 취침시간이 아침 7시 20~30분이었다.

약물치료는 안 했고 가끔 36시간 이상 잠을 못 자면 수면유도제 반 알을 쪼개 먹었다. 그럼 기가 막히게 깊고 긴 잠을 잤었다. 이 즈음에 쓴 일기를 보면 너무 술 냄새/자기혐오 냄새가 나서 못 읽겠다. 규칙적이고 질 좋은 수면의 부재가 사람 정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깨달아버려서 요즘도 수면량과 질에 엄청 집착한다. 수면 추적 앱을 두개나 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 잠을 못 잤던 이유는 "안 피곤+건강하지 않은 하루 루틴"이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스트레스 받는 상황의 종류가 다 다를 거다. 나의 경우 PT 받고 운동 열심히 다녔더니 서서히 좋아지다가 직장 생활하면서부터는 한동안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었다. 인간 싫어하고 단체생활 혐오하는데 하루 종일 적정 거리 유지할 줄 모르는 자들과 부대끼려니까 너무 정신력 소모가 심해서 저녁밥도 안 먹고 잠을 잤는데 이상하게 이때 몸무게가 늘었다.

요즘은 나에게서 불면의 흔적을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심지어 자기 싫어서 버티는 날들이 많다. 하지만 몇 년간 나름대로 여러 차례 실험해본 나에게 맞는 루틴들을 유지하고 있고, 항상 하루 피곤량이 충전기 꽂아두고 쓰는 아이패드 급이기 때문에 머리 대고 핸드폰을 손에서 놓으면 3분안에 딥슬립 가능하다.(핸드폰 놓기가 중요ㅠㅠ)

저자도 가장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을 찾아서 인생에 도움 되는 방식(회사 생활과 비슷한 느낌으로 돈벌이든.. 등등)으로 데일리 루틴에 끼워 보면 어떻겠냐고...... 저자가 만약 가까운 친구라면 제안해봤을거다. 내가 문보영 시인의 다른 책들은 안 읽어서 불면증의 사유가 무엇인지 감이 안 오지만 만약 건강상의 이유거나 나처럼 기타의 가벼운 사유가 아니었다면 오지랖 죄송하다. 아 그런데 예술인이라면 밤에 깨어있는게 더 이득일 것 같기도하고.. (편견인가 모르겠다.)



4-4 운전면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건 그냥 짧다.
운전면허를 5번 떨어졌었기 때문에 운전면허 이야기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휴.



5 작가에 대한 배신감

사실 <일기시대>를 읽기 전에 유튜브에서 문보영 시인을 본 적이 있다. 일방적 구면이었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일기시대>를 읽으며 상상했던 문보영 시인의 이미지와 유튜브 영상 속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뉴런과 시냅스들이 동일인으로 인지를 못하고 뇌 어딘가에 엉성하게 묻어뒀던 거다. 롸

그 문보영과 이 문보영이 같은 사람임을 알게되자 서러럭 배신감이 고개를 들었다. 아늬.. 자기전 한밤중에 베이글 먹고 라면 먹고 네이쉬르마른이랑 수다 떨고 그러고 또 과자 먹고 이러는데 넘나 힙스터 날씬이였던 것!

인스타도 갔었는데 밤에 주전부리 챙기는 사람으로는 안 보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세상은 불공평하구나!




6 마무리

3부의 '도서관은 이렇게 생겼다 1'도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의 상상 속 친구 뇌이쉬르마른이 사는 세계의 도서관에 관한 짧은 소설로 시작된다.

문보영 일기시대 138쪽


이 에피를 읽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그드라실은 사실 문보영 시인의 발끝이고

이그드라실의 나뭇가지에서 잠든 사람의 열매가 열리듯

시인이 누비는 길마다, 쉬고 떠드는 발자취마다 잠든 글들도 피어나는 거 아닌가?

시인은 본인이 가꾼 그 길을 자주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들을 한 아름 따가지고 가방 속 마끼아또 옆이며, 님부스 2000에 그득그득 싣고 다니다가 밤에 꺼내 먹는 거 아닐까!



ps1
처천재, 인력거, mbti관련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ps2
아.. 난 책이 원래 꼬질꼬질한 양장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민음사유튜브 #화진기현 의 에세이 소개편 보니까 새거재질이네??? 이제와서 예스24에 바꿔달라고 할 수도 없고ㅠㅠㅠ억울


ps3 황구이야기는 마음아파서, 2부 시에관한 이야기는 시에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못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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